어린 시절에 공부를 하고 싶었으나 공부를 하지 못해서 한(恨)이 맺힌 사람들의 이야기가 바로 지식에 고착이 일어난 경우에 해당된다. 공부에 한이 맺힌 사람들의 치료 사례를 예를 들어보자.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학창 시절에 학업을 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공부에 한이 맺혀서 자신의 상처받은 욕구 때문에 자녀를 통해서 대리 만족을 얻으려다가 결국 자녀를 파멸시키는 사례들을 종종 본다(김종만, 나: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 p71-75, 1999).

사례 1: 50대의 N씨는 청년 시절에 수년 동안 고등 고시 준비를 하다가 실패하고 지금은 지방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큰 아들 H군이 전교에서 1-2등을 다투며 학업이 우수하자 법대에 갈 것을 종용하였다. 그러나 H군은 미술에 취미가 있어서 미대를 고집하자 아들에게 아버지의 소원이다,소원을 풀어 달라,미대에 가면 졸업 후에 먹고살기 힘들다,그러니 법대에 가서 고시에 패스하라고 권유해도 아들이 말을 듣지 않자 강압으로 나왔다. 법대에 진학하지 않으면 학비를 지원할 수 없다,부자(父子)간의 인연을 끊겠다,만약 미대를 가면 혼자서 벌어서 가라. 아버지의 강압에 못 이겨 결국 H군은 굴복했고 명문 법대에 들어갔다. 그러나 H군은 학년이 올라갈 수록 전공 과목이 싫어지고 법학에 취미가 없었다. 점점 학교 생활이 싫어지고 성적은 하락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1-2등 하던 성적이 꼴찌에서 맴돌게 되었고 자신감을 잃어갔다. 친구들과 관계가 끊어지고 외톨이가 되어 방황하다 자아의 혼란으로 치료자를 찾아 온 것이다. 아버지의 욕구 충족을 위해서 자녀의 욕구가 희생된 것이다(김종만, 나: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 p71-75, 1999)..

사례 2: 중년의 K부인은 초등학교 때 공부를 잘했고 공부를 계속하고 싶었으나 가족 부양 때문에 초등학교를 마치지 못하고 중도에서 탈락하게 되었다. 결혼 후에 3명의 자녀를 두었고 경제적으로 넉넉하게 되었으나 한번 기회를 놓친 공부에 대한 한()은 가슴 속에 맺혀 있었다. 자신은 이제 어떻게 할 수 없지만 자녀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대학에 보내고 유학까지 보내야 겠다고 결심하고 초등학교 때부터 고액 과외가 끝나면 그것도 모자라 과외 학원으로 보냈다. 중학생이 된 큰 자녀는 공부가 미진하여 인문계 고등학교에도 진학이 어려워지자 아예 고액 과외 선생을 모시고 와서 자녀들에게 공부를 재촉하였다. 학교에서 받아 오는 시험 성적들은 일일이 체크해서 매달마다 점검을 했다. 공부에 시달리던 큰 아들이 부모의 기대대로 따라 갈 수가 없어 고통스러워하다가 고통은 자기 혼자만으로 충분하니 더 이상 동생들에게는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항의의 편지를 어머니에게 남기고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일간신문,1995)(김종만, 나: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 p71-75, 1999).

 부모들은 모두가 너 잘되라고 하는 거야,너의 장래를 위해서야,잘되면 너가 좋지 내가 좋으냐!라고 자녀들에게 말한다. 자녀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부모 자신들의 생각을 강요한다. 만약 부모의 요구가 자녀의 취미,적성에 일치하면 별 문제는 없다,그러나 자녀들이 싫어하는데 강압을 하게 되면 자녀를 억지로 하게 만들게 되고 자녀를 앞에서 억지로 끌고 가려는 것은 자녀를 혼란하게 만들고 고통 속으로 몰아 넣어 자녀의 성장을 방해하는 결과가 된다. 이것은 자녀를 통해서 못다 이룬 부모 자신의 욕구 충족을 위한 것이지 자녀의 욕구 충족을 위한 것이 아님을 부모는 모르고 있다. 부모들은 먼저 자녀가 스스로 즐겁게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고 자녀의 욕구가 우선하도록 고려해 주어서 자녀가 원하는 것을 뒤에서 밀어 주는 역할을 할 때 자녀의 성장을 도와주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김종만, 나: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 p71-75, 1999)..

사례 3: 1997년도 아카데미 상 수상 작품 샤인(Shine)은 아버지의 욕구 충족의 대리물로 희생된 한 천재 피아니스트의 삶의 과정을 다룬 실화 영화이다. 아버지 피터씨는 3가지 욕구에 발목이 잡혔다.

 첫 번째,어릴 때 음악가가 되고 싶어서 예쁜 바이올린을 샀으나 음악을 이해 못하는 자신의 아버지에 의해서 바이올린이 박살 당한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버지는 아들 데이비드에게 나는 항상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반복시켜서 명심하게 한다. 너는 음악을 이해해 주고 음악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는 이 아버지가 얼마나 고마우냐!를 머리 속에 주입시킨다.

 두 번째,아버지는 유태인 박해와 학살에서 살아 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강했기 때문이며 그래서 강자만이 살아 남을 수 있다,고로 항상 일등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 날 수가 없다. 이 강요는 아들에게 일등 강박 관념을 가지게 했다. 경연 대회에서 단 한번 친구 우드에게 일등을 물려 준 것을 평생 동안 열등 의식으로 달고 다닌다. 자신의 부모와 부인의 언니가 나치의 유태인 학살에 희생되었기 때문에 그 피해 망상에서 가족들은 항상 같이 살아야 안전하며 자녀들이 항상 자신의 눈 앞에 보이지 않으면 불안하다. 그래서 자녀들은 동네의 또래들과 어울리지 못하게 하고 가족들하고만 생활하게 하고 자신도 동네 사람들과 철저히 고립되어 살고 있다. 아버지는 아들이 각종 음악 콩쿠르에서 일등 상을 타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하고 각종 신문에 난 아들의 기사를 스크랩하여 그것을 보는 낙으로 산다.

 세 번째,세계에서 가장 연주하기 힘든 라흐마니노프 3악장을 듣는 것이 취미로 아들에게 시간 있을 때마다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이 곡을 연주하여 일등을 하도록 강요한다. 아들의 피아노 지도 교사에게 라흐마니노프를 가르쳐 주도록 강요하고 음악 콩쿠르에도 이 곡을 선택하도록 한다. 아버지는 자신의 어릴 때 이루지 못한 꿈을 천재 아들을 통해서 보상받으려 하고 있다. 음악 연주 경연 대회에서 아들이 잘하면 마치 자기가 잘한 것처럼 우쭐해지고 사회자의 인터뷰 시에 머뭇거리는 아들 대신에 자기가 아들의 의사를 대변해 준다. 주인공 데이비드는 어렸을 때는 아버지의 말을 잘 듣는 착한 아들로 고분고분하게 자라난다. 그러나 자아가 통합되고 뿌리가 내리는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갈등과 문제점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아버지는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No라고 해서는 안된다,아버지의 말을 거역하면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착한 사람은 아버지를 미워해서는 안된다라고 철저하게 반복해서 강조한다.

 자기 주장이 나타날 때마다 아버지의 가차없는 구타와 폭행의 처벌이 따라온다. 미국 유학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도 가족을 떠나서는 안된다는 아버지의 강요에 자녀의 의견은 묵살되었다. 처벌한 후에 아들을 끌어안고 이 세상에서 너를 제일 사랑하는 사람은 이 아버지이다를 강조하여 아들로 하여금 아버지에 대한 분노,미움을 억압하게 만든다.

 영국의 왕립 음악 학교로부터 장학금을 받게 되고 결국 아들은 위협과 하소연으로 붙잡으려는 아버지의 곁을 떠난다. 그러나 생각과 행동은 아버지가 머리 속에 주입한 것으로부터 떠날 수가 없다. 데이비드는 라흐마니노프 3악장의 연주를 위해서 산다. 지도 교수는 그 곡을 연주하려면 미치지 않고는 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그 곡이 표현하려는 감정을 나타내려면 미치게 된다는 경고에도 불멸의 곡을 연주하려는 제자의 소망을 위해서 지도 교수의 가르침은 아버지의 가르침처럼 자아가 없는 데이비드에게 각인 된다. 제자에게 악보를 익힌 후에 악보를 보고해서는 안된다,악보는 무의식 속에 넣어 두고 감정으로 연주해야 한다는 말을 그대로 받아 들여서 악보를 익힌 후에 악보를 불에 태우거나 물에 흘러 보낸다. 악보가 눈에 보여 서는 안된다는 말을 받아 들여서 헝겊으로 눈을 가리고 연주를 하고 실제로 눈에 글자가 보이지 않게 된다,감정으로 연주하기 위해서는 힘차게 피아노를 쳐서 줄이 끊어질 정도로 해라는 말에 정말로 힘차게 쳐서 줄이 끊어졌다. 데이비드는 결국 아버지의 소망이자 자신의 목표인 라흐마니노프를 훌륭하게 연주하고 청중들의 열광적 환호 속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져 정신 병원에서 깨어나 정신 이상자가 되어 젊음을 정신 병원에서 보내게 된다.

 더 이상 연주를 해서는 안된다는 정신과 의사의 말을 그대로 실천하면서 자아를 잃어버리고 남의 말만 반복하는 기계와 같은 인간이 되었다. 정신 병원에서 끊임없이 지껄이는 행동은 어릴 때 말없이 지냈던 억압된 욕구의 반동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끝없이 지껄이는 말 뒤에는 대부분이 다른 사람의 말의 반복이 많다. 그후 자신의 의사 표시가 조금씩 많아지면서 정신 병원에서 빠져 나오게 되었고 나왔을 때는 이미 중년이 되어 있었다.

 데이비드가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만났을 때 아버지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예쁜 바이올린을 샀는데 어떻게 되었는지 아느냐?는 아버지의 질문에 처음으로 모르겠다No의 대답을 하고 아버지에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에서부터 문제는 조금씩 풀리기 시작한다. 자아를 찾으려는 그의 노력은 피아노를 치지 말라는 의사의 말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의사대로 피아노를 칠 것을 다짐하고 카페에서 손님들을 위해서 피아노를 연주해 주면서 주위의 칭찬과 격려에 힘입어서 자신을 회복해 간다.

 데이비드는 어릴 때 성적 욕구가 철저하게 억압되어 있었다. 아버지의 처벌에 분노해서 목욕탕 안에서 오줌을 싸는 행동,피아노 지도 교사가 미국 유학을 권유할 때 사춘기의 소년이 아직도 이불에 오줌을 싼다는 어머니의 말 속에 나타나 있다. 이후 자신을 정신병원에서 퇴원시켜 도와준 부인의 유방을 만지려고 하거나 바지를 벗고 성기를 노출시키는 행동 등에서 자신의 성적 욕구를 억압하고 처벌한 부모에 대한 분노의 표시가 변태 행동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사춘기 때 단 한번 이성과 만나서 몇 분 동안 이야기를 나누다 아버지의 호출로 중단된 것과 그리고 유학 시절 친구들의 계략으로 술집에 가서 호스티스와 함께 잔 것이 이성 관계의 전부 였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서 살았다. 아들의 성공을 위해서 살았고,아들이 각종 대회에서 일등 하는 것을 일생의 보람으로 여기며 살았다. 아들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 아들만 보고 살았다. 그러나 그것이 결국 아들의 자아를 철저히 말살시키는 것임을 몰랐다. 아들을 통해서 어릴 때 못다 이룬 자신의 소망을 충족하고 있는 것임을 몰랐다. 아버지가 시키는 데로 하는 것이 효자이고 최선임을 알고 살았던 아들은 결국 정신 이상자가 되었다. 자아를 잃어버린 것이다. 아들은 가 없다,내 의견”“내 주장이 없다. 병원에서 퇴원 후 데이비드가 지껄이는 말 속에 고양이는 자기를 해치려는 것을 모른다,나는 전생에 고양이인지도 모른다는 표현 속에서 아버지가 시키는 데로 한 것이 자신을 파멸시킨 원인임을 희미하게 느끼고 있음을 보여 준다.

 성인이 된 데이비드는 미성숙한 행동을 많이 보이고 어떤 때는 어린 아이 같은 행동을 보인다. 그는 3세-5세 때 성적 욕구의 성장이 중지되면서 성적 욕구는 그 이후에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데이비드의 성적 욕구는 어린애처럼 미성숙할 수밖에 없고 자신을 표현하는 행동은 사춘기 전에 이미 발달이 지연되었기 때문에 자신의 의사 표시가 없다,방안을 뒤집고 물의 틀어서 물난리를 치는 것은 2세-3세 때 아버지의 훈련으로 어린아이답지 못하고 어른스러워졌기 때문에 그 시기의 성장이 중지되어 어른 되어서도 철없는 어린이 같은 행동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김종만, 나: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 p71-75, 1999).

샤인의 사례를 더욱 상세하고 알고 싶으신 분은 영화 속에 주인공이 심리분석에 들어가서 "샤인(Shine)"에 들어가 보세요.